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-이란 관계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튀르키예]]와 [[이란]]의 관계. 양국은 종교, 문화적으로 가깝지만, 동시에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사이가 좋지는 않은 편이다. 적지 않은 [[튀르키예인]]들이 가지고 있는 이란에 대한 이미지는 "꽉막힌 [[이슬람 원리주의]]의 본산" 정도로 요약되는데 튀르키예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튀르키예의 세속주의를 훼손하려하는 움직임이 보일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비판 멘트가 '''"이슬람주의자 때문에 튀르키예가 이란화 되어간다.", "[[이스탄불]]이 [[테헤란]]이 되어가고 있다."'''일 정도로 이란은 튀르키예와 대척점에 있는 무언가의 상징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. 반대로 음주의 자유, 개방적인 이미지의 튀르키예 대중 문화 때문에 이란 젊은이들은 튀르키예를 굉장히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.[* 튀르키예와 함께 이란 젊은이들이 부러워 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은 [[레바논]]과 [[바레인]]이다. 레바논은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대중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이고 바레인은 술을 판매하기 때문.] 튀르키예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세속적인 분위기와 이란의 부족한 일자리 문제가 맞물려 튀르키예로 이민을 희망하는 이란인들이 많아 튀르키예로 이민가는 이란인들의 수가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20&aid=0003170713|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]]. 튀르키예와 이란 양국은 상호사증면제를 실시하고 있다. 더불어 친미 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는 튀르키예와도 국경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빚고 있는데, 원수까진 아니어도 그렇다고 우호관계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. 물론 [[수니파]]와 [[시아파]]간의 갈등, 이슬람의 세속화, 서방세계에 대한 입장 등 현대의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, 역사적으로도 골이 깊다. 이란인들과 [[튀르크]]인들의 투쟁은 5~6세기 [[사산 왕조]]와 돌궐의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페르시아의 신화 서사시인 [[샤나메]](شاهنامه)[* 튀르크인들이 페르시아 문화의 상당부분을 흡수하면서 심지어 오스만 제국에서도 페르시아어를 주요 학술 용어 중 하나로 사용했을 정도였다.]에서 이것을 이란과 투란(중앙아시아 투르크)의 전쟁으로 형상화했을만큼 오래된 것이지만, 현대 이란과 튀르키예의 악감정은 근대 시절 [[오스만 제국]]과 [[사파비 왕조]], [[카자르 왕조]] 등이 박터지게 싸우던 것에서 기원한다. 이란은 튀르키예와 역사적 사건으로 이를 가는 [[아르메니아]]와 [[이란-아르메니아 관계|사이가 좋은 편이다.]] 사실 원래 아르메니아가 범 페르시아권의 일부였다가 서방(그리스-로마-기독교)의 영향을 오랫동안 강하게 받아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. 아르메니아가 과거 [[조로아스터교]]를 믿으며 페르시아인이랑 거의 형제처럼 지내던 역사도 있고 이란에서 더 좋게 봐주는 점도 있고, 되려 중세 근대를 거치며 아르메니아인들을 많이 받아주고 심지어 호메이니 정권조차도 아르메니아계를 우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